365일 매일 매순간 찾아오는 감사의 순간과 기적들,
묵상하면서 받은 은혜와 하루를 살아가는 나의 다짐과 감사하는 마음,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편지 등을 올리는 공간입니다.
QT나눔 다윗이 만난 예수님
2021.02.21 06:56
다윗이 밧세바를 범했을 때,
이 때 다윗이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시 51:4)
대개의 경우, 죄를 지으면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의 눈초리를 신경 쓰거나
자기 자신에 대한 유감(자기혐오, 혹은 자괴감 등)에 빠집니다.
그런데 다윗은 조금 달랐습니다.
신분이 왕이라서 직, 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죄스러운 마음을 느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이 너무 커서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죄악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다는 것,
내가 죄인이었다는 것,
하나님이 진정 옳았다는 것
이것들만을 다윗은 보았습니다.
우리 영혼은 신기하게도, 스스로의 죄악을 깨달으면 자유를 느낍니다.
‘아, 정말 내가 죄인이 맞구나!’
‘아, 하나님만 옳았구나! 그래 맞아!! 하나님만 옳았어’->자유
‘근데 이 하나님이 왠지 나를 용서해 주실 것 같다’->자유
현시대의 많은 기독교인이 이 자유를 못 누리는 이유는
그들이 죄를 깨닫고, 입술로는 죄를 고백하지만 여전히
자아성찰 능력을 ‘잘’ 발휘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가 현대판 바리세인이 탄생하는 지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이 아닙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아주 맛이 없습니다.
그리고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믿음’과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상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죄인식은 절대해결불가의 죄인식입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 51:5)
제가 볼 때,
다윗이 “내가 오직 주께만 범죄하였습니다”라고 고백할 때,
그는 아마도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벌거벗고 있었을 때의 형상을
일시적으로나마 회복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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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글에서 예수님을 만난 가나안 여인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가나안 여인, 다윗이 아니더라도 성경에는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로마의 백부장, 예레미야, 사마리아 여인 등등...
특별히, 예레미야의 얘기를 잠깐 들어 볼까요?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내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렘 20:8~12)
예수님과의 만남은
사람마다, 또 각자의 시기에 따라
그 양상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믿고 섭취하여 영양분으로 삼아
결실을 맺는다는 점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모두가 같습니다.
누가 크냐?, 혹은 작으냐? 이런 것도 없습니다.
그냥 예수님이 그 사람 안에 있기만 하면 다 큽니다.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마 20:16)
이것이 진정한 율법, 복음이고 하나님의 의입니다.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사 51:4)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6~17)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눅 16:16)
저도 잘 몰랐는데 최근에야 다윗 시대만 해도 구약 율법을 예수님 시대처럼 심각하게 지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윗이 율법을 심각하게 알았다면 아마 밧세바를 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나중에 구약 율법을 읽으면서 자신의 죄를 깊이 참회하면서 시편 51편, 19편, 23편을 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구약의 인물들을 통해서 알고 있었기에 (히브리서에 나온 믿음의 주인공들이겠지요? 아마도??) 자신이 잘못했을 때 바로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지금 신약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관점에서 보니까 다윗은 요한복음 15장에 나온 "내 안에 거하라" "포도나무 가지로 남아 있어라" 라는 원칙을 다윗은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시편 51편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내팽겨치지 말아 달라는 기도는 하나님이 어쩔 수 없이 받아주실 수 밖에 없는 기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살인자, 간음자, 살인교사 등등 이런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다윗에게 아들을 주셨고 이 아들을 통해서 성전을 짓게 하셔서, 자신이 다윗에게 약속했던 성전 건축을 그대로 지키셨습니다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느헤미야 예루살렘 귀환 이후인 것 같은데, 말씀으로 인한 부흥이라고 우리는 배웠지만, 그래서 바리새인들이란 새로운 종교 집단이 탄생했고 율법학자를 양산하는 교육 제도가 생겼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에 그들이 얼마나 타락했고 형편 없었는지는 복음서에 너무 잘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라고 못 박아 말씀하셨는데도 오늘도 예수님 없이 조국 교회를 걱정하는 분들이 넘쳐서 문제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