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동사
GET을 볼때면,
참으로 우리들의 인생을 요약해주는
단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저는...
저 같은 사람이 번영한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추악해질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건 저의 진심입니다.
예전에 무슨 근거로
그토록 제 자신의 번영을
추구했었는지
아연해집니다.
도대체 이런 저에 대한
주님의 끝없는 사랑은 그 근거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주님의 아름다운 인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답다는 표현이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주님의 이 인격이 제게는
복음이고
실제로 능력이 있으며
그래서 저는 이 복음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이 구절을 막연하게 해석할 수 있지만
무엇 때문에 수고하고 짐을 지고 있는지가
본문에 나온다고 어느 목사님이 아래와 같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구절 바로 전에는
갈릴리 호수의 큰 고을에서 이적을 베푸셨지만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사건이 나옵니다
헷세드의 사랑을 베푸시는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꾸짖으셨습니다
"고라신아, 너에게 화가 있다. 벳새다야, 너에게 화가 있다. 너희 마을들에서 행한 기적들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했더라면, 그들은 벌써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쓰고서, 회개하였을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화가 있다. 너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치솟을 셈이냐? 지옥에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 가버나움에서 행한 기적들을 소돔에서 행했더라면, 그는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절대 숨기지 않고 그대로 말하는 예수님에게서 저는 헷세드의 사랑을 느낍니다. 요즘처럼 왠만하면 용서해 주고, 그냥 넘어가라는 가르침들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예수님(=하나님)은 그들에게 베푸신 큰 기적을 무시한 사람들,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고 인전하지 않으려는 이들을 향해 저주에 가까운 경고를 하셨습니다. 헷세드의 사랑은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사랑이라는 사실을 바로 이 사건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이 역시 하나님이 예정하신, 계획한 사건이라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역시 그날은 힘드셨던 모양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였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이 일을 지혜 있고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드러내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의 은혜로운 뜻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맡겨주셨습니다. 아버지 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으며, 아들과 또 아들이 계시하여 주려고 하는 사람 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6절에 나온대로,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도하는 자세를 예수님은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외친 말씀이 바로 형제님이 감명 받으신 그 구절입니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예수님처럼,
그날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고라신과 벳세대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의 죄악과 뻔뻔함 밑에서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수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때문에 마음의 짐, 육신의 짐이 부거웠습니다.
그렇게 많이 기적을 베풀었지만, 끝내 예수님을 무시하고 배척했던 세상은 살만한 곳이었을까요?
그럴 리가 없겠지요!
예수님은 그렇게 수고하고 지쳐있는 무리를 그렇게 위로해 주셨습니다.
세상의 걱정과 짐을 나에게 와서 내려 놓고, 나를 따라오라는
그러니까 요한복음에 나온 그대로
"내 안에 거하라...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니"
라는 메시지와 일치하는 말로 위로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