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묻고 청년이 답하다’는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신앙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교회의 사명과 개인의 믿음을 고민하는 좌담 형식의 코너입니다. 이번 간담회에서는 앨런 크라이더의 저서 ‘초기 교회와 인내의 발효’ 중 1부와 2부(총 4부)를 함께 읽고, ‘인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진솔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참석자
- 김철우 집사 (이하 ‘사회자’)
- 나원준 기자 (이하 ‘나’)
- 이시우 기자 (이하 ‘이’)
- 이유진 기자 (이하 ‘유’)
이번 간담회의 문을 연 사회자는, 책의 핵심을 ‘속도와 결과 중심인 오늘날의 문화와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이라 설명하며 초기 교회가 지녔던 인내의 정신을 강조했다. 초기 교회는 전도 전략이나 성장 목표가 없었지만, 그리스도인들의 삶 자체가 ‘매력적인 복음’이 되었고, 그 모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왔다. ‘인내의 발효’라는 표현은 그런 변화를 가능케 한 신앙의 본질을 드러낸다.
책은 인내를 단순한 참음이 아닌, ‘하나님의 타이밍을 신뢰하는 태도’로 정의한다. 그 안에는 세상과 구별되되 세상을 대적하지 않는 공동체의 모습, 그리고 약자를 돌보고 원수에게 복수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담겨 있다.
사회자는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참석자들에게 “우리는 왜 조급한가?”, “인내는 오늘날에도 능력인가?”, “교회공동체는 세상과 어떤 점에서 다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좌담을 시작했다.
사회자: 이 책을 통해 초기 교회가 세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변화시켰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도 전략 없이도 인내와 삶의 태도만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였던 교회. 오늘날의 우리는 그 모습을 얼마나 따르고 있을까요?
나: 저는 제목부터 마음에 걸렸어요. ‘초기 교회’, ‘인내’라는 단어가 제 삶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도 읽다 보니, 지금 내 삶 속 조급함과 맞닿는 지점이 있다는 걸 조금씩 느꼈습니다. 제 조급함은 대부분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옵니다. 취업, 관계, 진로 같은 게 너무 불확실하니까요.
유: 저도 비슷해요. 지금 20대가 느끼는 조급함은 구체적인 문제에서 시작돼요. 대학 입시, 스펙 쌓기, 취업 준비...
계속 뭔가를 해내야 하는 시기잖아요.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인내’는 박해 속에서 신앙을 지키는 이야기라, 지금 내가 느끼는 조급함과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사회자: 책에서는 ‘인내가 공동체의 문화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인내는 오히려 ‘호구’라는 말로 치환되기도 하죠. 여러분은 인내를 능력이라고 느낀 적이 있나요?
유: 예전에는 그렇게 믿었어요. 어릴 때는 바르게 살면 누군가는 알아주리라 생각했고, 그렇게 사는 게 멋있다고 여겼죠.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런 확신이 조금씩 흔들렸어요. 실제로 그렇게 산다고 해서 결과가 따라오지 않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이: 저도 원칙대로 살고 싶었지만, 사회는 늘 실용과 성과를 중시하잖아요. 인내한다고 해서 환영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미련하게 보일 때도 있어요. 누군가는 '그냥 그렇게 참는 건 병이지'라고 말하니까, 인내하는 삶이 옳은 건지 헷갈릴 때가 많아요.
나: 그런 면에서 인내는 참 복잡한 덕목 같아요. 내가 참는 것이 옳은 줄은 아는데, 그것이 곧 ‘손해’로 돌아오는 순간엔 다시 흔들리게 되더라고요.
사회자: 책에서도 그렇고, 삶 속에서도 결국 신앙은 ‘무엇을 내려놓느냐’와 연결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내려놓음’의 기준은 모호하잖아요. 여러분은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나: 얼마 전에 수련회에서 친구랑 밤새 이 얘기를 했어요. 그 친구는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하고 신학의 길로 가겠다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더라고요. 저는 그게 너무 멋있기도 했지만, 동시에 과연 그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이: 남들과 비교하면서 생기는 혼란도 커요. 교회 공동체 안에 있다 보면, 더 많이 헌신하고, 더 믿음 있어 보이는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잖아요. ‘왜 나는 저만큼 못하지?’ ‘저 사람은 저렇게 내어드리는데 나는 왜 이만큼밖에 못하나?’ 하면서 자책하게 되기도 해요.
유: 그런데 그런 비교가 꼭 옳지는 않은 것 같아요. 사람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다르고, 속도도 다르잖아요. 나에게 지금 주어진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내어드리는 것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요.
사회자: 책은 말합니다. ‘초기 교회는 인내와 선한 행실로 이방인을 변화시켰다.’ 여러분도 삶으로 복음을 전하고자 애쓴 적이 있었나요?
나: 저는 제 가족과 여자친구가 교회를 다니게 되길 바라며 그런 삶을 살고 싶었어요. 일요일에 데이트보다 예배를 선택하고, 수련회도 가고.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변화는 없더라고요. 여자친구는 ‘교회 가는 건 괜찮지만, 나한테 교회 얘기는 꺼내지 말아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진짜 낙심됐어요.
유: 믿지 않는 사람에게 복음을 삶으로 전하는 건 생각보다 많은 인내가 필요한 것 같아요. 변화가 보이지 않아 조급한 적도 있었어요. 책은 그리스도인의 성품, 태도, 행동이 가장 믿을 만한 전도의 수단이라고 말하는데요. 억지로 끌기보다, 신실하게 살아가는 삶 자체가 복음이 될 수 있고, 한 사람이 변화되기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자: 교회 공동체는 세상과 다른 문화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책은 말합니다. 여러분은 교회 안에서 그런 구별됨을 느끼고 있나요?
이: 저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교회와 세상의 차이를 많이 느꼈어요. 회사에서는 갈등이 생기면 쉽게 선을 긋거나, 그냥 안 보면 그만이라는 분위기예요. 하지만 교회 안에서는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있잖아요. 그래서 끝까지 함께하려고 애쓰게 되는 것 같아요.
나: 제 동생이 재수 중인데요. 교회 가면 ‘자기 이야기를 제일 먼저 들어준다’고 하더라고요. 재수생이라는 이유로 사회에서는 소외되기 쉬운데, 교회에서는 오히려 ‘잘 왔다’, ‘수고 많다’며 환대해 주니까 그런 따뜻함을 느끼는 거죠.
유: 공동체 안에서도 다툼이나 오해는 생기지만, 그걸 넘어설 수 있도록 ‘한 몸 된 가족’이라는 인식이 있다는 게 차이인 것 같아요. 물론 그 이상을 기대했다가 실망한 적도 있지만, 그럼에도 다시 회복되는 힘이 있는 곳이 교회라는 생각은 들어요.
사회자: 오늘 이야기를 통해 인내라는 단어가 단순히 ‘참는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태도라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초기 교회가 보여준 인내가 공동체의 문화로 자리 잡았던 것처럼, 우리 역시 작은 실천들을 통해 삶으로 신앙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요?
이: 거창한 결단보다, 작은 선택들이 쌓여 인내가 되는 것 같아요. 말 한마디 참는 것, 억울해도 웃으며 넘기는 것, 다 그런 게 아닐까요.
유: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우리 시대 청년들에게 필요한 인내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나: 저도 아직 기다리는 중이에요. 가족, 여자친구, 그리고 제 삶 속에서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요. 책을 읽고, 오늘 이 시간을 통해 그 기다림이 헛되지 않을 거란 확신을 조금은 되찾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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