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나눔 제국주의의 앞잡이를 차별하지 않으신 예수님
2022.10.18 03:20
누가 복음 19장 삭개오 이야기는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누가는 삭개오 이야기를 19장에 넣었을까요? 저도 어제까지 몰랐습니다
누가는 2절에서 삭개오는 "세리의 우두머리" 세관장, 즉 로마 제국주의 앞잡이이고 돈을 많이 축재한 "부자"라고 소개합니다. 하지만 조국 교회에서는 이 정보를 무시하고, "키 작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무 위에 올라가서 예수님과 눈이 마주쳐 만났다" 정도로 간단 축소해서 이야기를 전합니다. 저도 오래 전 주일학교 공과교재에 그렇다고 나와서 그렇게 학생들에게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삭개오보다 키 큰 사람들은 예수님 관심 대상 밖이었을까요? 또 예수님을 만나려면 눈을 마주쳐야 할까요? 그럴리가요... 절대 그럴 리 없겠지요... 장님이 예수님을 만나고 눈을 떴습니다
흥미롭게도 누가복음 18장에는 "세리"를 경멸하는 바리새인, 예수님 앞에서 거짓 신앙이 들통난 "부자" 지도자(바리새인)가 등장합니다. 19장에 나오는 삭개오는 18장에 나온 "부자"였고 바리새인에게 경멸 당하고 회당 밖에서 기도할 수 없었던 18장에 나온 세리였습니다. 그러니까 19장 삭개오 이야기는 앞 18장에 나온 사건들의 연속선 상에서 봐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추가로 누가복음 3:13에서 세례자 요한이 세리를 향해 "너희에게 정해 준 것보다 더 받지 말아라."라고 말했는데, 당시 세리들은 세금을 더 거두고 나머지를 착복했습니다. 그래서 마태 5:46에서 예수님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너희가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라고 말했을 정도로 세리는 동족 유대인의 경멸 대상이었고 누가복음 18:13에서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 내고, 가슴을 치며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말"할 정도로 그들은 회당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조국 교회에서 자주 듣는, 그러나 구체적인 예를 전혀 듣지 못하는 "차별 당하고 멸시 받는" 경우가 바로 삭개오입니다. 삭개오는 "제국주의 경쟁"으로 동족에게 상처를 준 세리의 우두머리였고, 부자였습니다! 당연히 종교적 열성당원 바리새인 제사장 율법학자들의 성토대상이었습니다. 누가는 그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삭개오는 부자였고 여리고 성 세리들의 우두머리였다"고 그를 19:2에 소개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제국주의 경쟁을 부추기며 동족을 착취하던 삭개오를 부르시면서 "내가 오늘 너의 집에 거하여야 하리라 must stay at your home"이라고 같이 가던 예수님의 일행, 그 장면에 있었던 사람 모두를 경악하게 했습니다. 조국 교회의 많은 분들이 "독재자" 박정희 이승만 전두환 장군을 미워하듯이, 삭개오는 당시 사람들의 미움의 대상이었는데, 예수님은 그날 "내가 너희 집에 꼭 머물러야겠다" 이렇게 말하시고 그 집으로 가신 겁니다!!!! 마치 문둥병자 집에 꼭 가야겠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어떻게 그날 예수님에게 왔을까요? 새생명 잔치 초대를 받아서? 삭개오 옆에 친구가 추천해서? "세리와 창기의 친구"라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뭐 이런 분이 다 있나? 한 번 얼굴이라도 봐야겠네" 그래서 가지 않았을까요? 얼굴을 봐야겠는데 키가 작아서 보이지 않으니까 나무에 올라가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가던 일행, 예수님을 따라 가던 일행이 여럿 있어서 누가 예수님인지 알아 볼 수 없었습니다! 요즘 같이 인터넷이 발달해서 스마트폰으로 교회 홈페이지 담임목사님 얼굴 금방 확인할 수 있지만, 그때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 순간 예수님 주변에는 병 고치려는 사람들이 몰려와 인산인해였고, 따라서 예수님 얼굴이라도 보려고 갔던 삭개오는 난감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에 예수님이 나무 위에 올라간 삭개오를 바라 보시면서 "삭개오야!!! 이리 내려 오너라!!!" 이렇게 부르신 겁니다!!!
주일 학교에서는 잘 이야기해 주지 않는 장면인데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를 때도, 모세를 부를 때도, 야곱을 부르 때도 이렇게 부르셨지요... 사실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그 자리에 많았습니다. 삭개오는 그냥 "세리와 창기의 친구"로 소문난 그 분 얼굴이라도 보려고 나무 위에 올라 갔는데 예수님이 삭개오를 바라 보면서 "삭개오!!! 이리 내려 와!" 이렇게 말하고 나서 "오늘 네 집에 머물러야겠어!!" 이렇게 말하신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국주의 경쟁에서 지친 영혼을 위로해야 한다"
"베풀지 않아서 문제다"
"행하지 않아서 문제다"
"관계의 혁명을 이룩해야 한다"
"세리와 납세자가 편견을 버리고 한 몸이 되어야 한다"
이런 교육 없이
예수님이 그 집에 머무시는 동안
삭개오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바로 그날
"재산 1/2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쓰고"
"자신에게 착취당한 피해자에게 4배 보상하겠다"
고 예수님 앞에서 말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기에,
누가는 결국 다른 복음서에 없는 이 사건을 꼭 기록해서 후세의 믿는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결심했구요....
(이날 현장에 있었던 베드로는 나중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라는 유명한 말을 확신을 갖고 말하게 됩니다)
사실 많이 궁금합니다.
얼마나 예수님에게서 감동 받았으면 그런 고백이 나왔을까요?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관계의 혁명"에 대해서 설명했을까요? "예배에 목숨을 걸어라"고 하셨을까요? "제국주의 경쟁에 상처 받은 사람을 위로해라"고 하셨을까요? "납세자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세리와 납세자가 한 몸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을까요?
글쎄요... 하지만 누가복음 18장에 나온 사건들은 예수님이 삭개오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을지에 대한 약간의 힌트를 주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예수님이 오셔서 삭개오가 자신의 죄인된 모습을 깨달은 결과가 아닐까요? 빛이신 예수님이 그날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면서 찾아 오셨지요. 삭개오가 찾아 간게 아니구요! "세리와 창기들의 친구"라고 바리새인, 제사장, 율법학자들에게 조롱받던 예수님이 궁금해서 기웃거렸는데 예수님은 삭개오를 부르셨지요. "차별 받는 손가락질 받는 네 집에 머물러야겠다"고 다들 듣게 큰 목소리로 말하셔서 삭개오가 깜짝 놀랐지요!
그런데...예수님은 누가복음 18장에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힘들다고 하셔서 제자들을 걱정하게 만드셨지만 (돈, 물질 싫어할 사람 없지요?) 하나님의 뜻이면 부자도 천국에 갈 수 있다 가능하다고 하셨는데, 바로 19장 처음 삭개오를 통해 그 예를 보여 주셨습니다!!! 항상 예수님은 이렇게 구체적인 예를 들어 우리들에게 설명해 주시는 좋은 선생님이십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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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재
2022.10.29 00:18
삭개오처럼 변화된 인생을 살려면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제대로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살면서 창세 전부터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합니다
누가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어떻게 저런 악당 매국노 부자놈 집에 가지? 쑤군거렸다"고 기록했는데, 애석하게도 요즘 "조국" 교회에서도 그렇게 삭개오의 내면/인간됨을 모르고 함부로 삭개오를 "악당"이라고 부르며 정죄할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삭개오를 정죄하지 않으셨는데... 십자가의 오른편 강도가 마구 욕 해도 참으셨다가 나중에 그가 "나중에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했을 때 "오늘 나와 낙원에 함께 있겠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정죄할 수 있을까요?
그런 분들은 거의 대부분 "부자"와 "약자 가난한 자"의 (Karl Marx가 만든)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조국 사회를 파악하고, 삭개오와 같은 "부자"면서 "세리의 우두머리"가 "조국 사회 문제"의 뿌리라고 잘못 믿고 그렇게 가르치곤 합니다
그런데 죄인을 찾으시는 예수님은 그날도 "삭개오야 이리 내려 오너라"라고 나무 위에 올라갔던 삭개오를 부르셨습니다. 정말이지 삭개오는 그날 자신의 이름을 예수님이 그렇게 큰 소리로 불러 주실지 전혀 전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예수님이 그렇게 삭개오에게 은혜를 베풀면서
"로마 제국주의의 빈부격차 문제 네가 해결해야겠다"
"내가 담벼락을 허문 것처럼, 앞으로 납세자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세리와 납세자는 하나 되어야 한다"
"삭개오 너는 베풀지 않아서 문제다"
"삭개오 너는 네 돈으로 너네 애 과외 열심히 시켜서 문제야"
"삭개오 네가 제국주의 경쟁에 앞장서서 여러 사람을 괴롭혔다"
라고 삭개오를 정죄하며 만나셨을까요?
그래서 그렇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삭개오가
"앞으로 재산 1/2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겠다"
"전에 세금을 착복해서 괴롭혔다면 남의 것을 도둑질한 것과 마찬가지이니 4배로 보상하겠다"
라고 여러 사람 보는 자리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을까요?
삭개오는 그날 "세리와 창기의 친구"라고 조롱당했던 예수님 얼굴이라도 보려고 앞길로 미리 가서 나무에 올라 갔는데, 예수님을 둘러싼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을 알아 볼 수 없었는데, 이 순간 예수님이 삭개오의 이름을 불러 주셨고 삭개오의 집에 머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아주 큰 소리로!!!
하나님은 그렇게 창세전에 택하신 삭개오를 부르셨는데, 왠일인지 조국 교회에서는 그런 예수님, 그런 하나님을 완전 무시하고 빈부격차를 해소해야 한다는 주제로 이 사건을 축소 설명합니다.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빈부격차를 너희가 줄이는데 노력해야 한다" 라고 나오지 않습니다
"조국교회"라는 명칭이 성경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모세의 율법이나 예언서에 "빈부 격차를 너희가 해소하라"고 나오지 않습니다. 정확하게는 예언서나 율법에는 "너희 죄 때문에 이웃이 어렵게 살고 있다"라고 나옵니다. 바울 역시 "돈을 사랑하는 것, 인간의 죄가 일만 악의 뿌리"라고 디모데전서에서 설파헀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 조국 교회에서는 "나 이외에 다른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을 어기고 "빈부격차 해소가 지상 목표"라는 우상에 절하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 주장을 듣다 보면 부자가 있어서 세상 문제가 생긴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역사나 정치적 식견에서 끈이 짧은 제가 알기론, 인류 역사에서 그런 "빈부격차를 해소한" 나라는 존재한 적이 없고, 그런 빈부격차 없는/적은 나라 만든다는 달콤한 말에 넘어갔던 사람들 모두 다 같이 "인간의 죄 때문에" 더욱 비참하게 되었다는 사례는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나 이외에는 다른 (빈부격차 없애기 줄이기)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경고하셨던 하나님은 오늘도 "누구든지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 하나님께 나갈 자가 없느니라"고 말하고 계십니다. 성경의 예수님은 모세에게 율법을 주셨던 어제나, 오늘이나 앞으로 올 내일까지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히브리서 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