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용하고 계신 브라우저는 오래되었습니다.
알려진 보안 취약점이 존재하며, 새로운 웹사이트가 깨져 보일 수도 있습니다.
최신 브라우저로 업데이트 하세요!
오늘 하루 이 창을 열지 않음
남서울 톡톡

서울에서 아주 유명한 대학의 교수회의에서 어느 여자 교수님이 “여성 차별을 대학 차원에서 다루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어느 남자 교수(남서울교회교인)는 “혹시 본인이 그런 차별 받고 있거나 아니면 그런 경우를 알고 계신가요? 그런 경우라면 좀더 듣고 싶습니다” 라고 물었습니다. 그 여자 교수님은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실화)


그 여자 교수님처럼 차별을 관념으로는 이해하지만 실제의 예로서 설명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차별이란 단어는 신약 구약 성경에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남녀, 학벌, 인종, 이념에 의한) “차별 금지”를 제자공동체의 행동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결론 내릴 필요가 없습니다. 아마 신약에서 “차별”에 대한 예를 굳이 찾아 본다면 야고보서에 부자 교인이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지 말라 또 에베소서 6장에 나오는 노예를 차별 대우하지 말라 정도일 것 같습니다. 나아가 십계명이나 예수님의 산상수훈, 신약의 사도적 진리 어디에서도 “차별 금지” “계급타파”를 명시적으로 찾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찾기 힘든 “차별 금지”를 항상 우리 마음에 두고 살아야 할까요?


놀랍게도 성경에는 오늘날 흔하게 듣는 차별 받는 대상으로 일컬어지는 “사회적 약자” “소외된 자” 같은 표현이 없습니다. ‘사회적 약자’란 사회로부터 약자가 되었다는 말인데 성경에서 ‘사회’와 같이 추상적 표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외국인, 고아, 과부처럼 절대 혼동할 수 없게 대상을 정하셨고 그들을 “차별해서 보살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사회’가 없고 ‘죄를 지은 개인’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자리에 '사회' 가 심판 받는다고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신약 시대 사도들 역시 차별 혹은 계급 철폐를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현실(=차별, 계급)을 인정하고 그렇게 사셨던 예수님처럼 살라고 반복해서 권합니다. 예를 들어:
(1) 남편은 사랑하고 아내는 순종하라 (남녀 차별)
(2) 험한 직장 상사를 만날 경우 예수님이 참으셨던 것처럼 잘 섬겨라 (상하차별)

(3) 교회에서 직분/역할에서 차별은 발가락이 손가락과 다른 것처럼 당연하다 (교회 상하차별)
(3) 결혼만이 하나님이 인정하신 남녀 관계이다 (교회에서 동성주의자 차별은 당연)
(4)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돕고 젊은 여인은 혼인하도록 하고 과부로 받지 말라 (현실 인정)

(5) 위선자가 꼭 회개하도록 권해라. 그 일로 치리할 때 예수님이 반드시 함께 계신다 (위선자 차별)
(6) 일상생활의 평안을 위해 독재자라도 그를 위해 기도하라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상하관계)
(마태 18: 1~20, 베드로전서 3장, 에베소 서 6:1~10, 골로새서 4:1~6, 빌립보서 4:1~9, 디모데전 2:2, 디도서, 로마서 13:1 등등)


이런 가르침들은 하나 같이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인 권고였는데, 거기에는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며 무슨 목표를 위해 싸우는지 모르는) 정의를 위해 직장 상사와 싸워야 하고, (어떤 원칙도 없이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나는데도) 무조건 용서하고 포용하는 “헷세드” 사랑으로 살아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사람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보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 자신이 사람 차별 심하게 했다고 성경에 나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 많은 헌금을 바쳤던 바리새인과 율법학자의 정체를 폭로했고, 동전 한 닢을 받치면서 부끄러워 했던 과부를 칭찬했습니다. 사람에게 존경 받으려고 미사여구로 길게 기도했던 종교지도자를 공격했고, 골방에서 숨어 드리는 개인 기도를 하나님이 차별해서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마태 5~6)


예수님은 “목숨 걸고” 따르겠다는 부자청년에게 “네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고 나를 따르라” 라고 해서 그 청년이 떠나가게 하셨지만(마태 19:16~22), 한 여인이 값비싼 향유로 예수님 발을 씻겼을 때 제자 모두가 돈 낭비라고 한 목소리로 원색 비난했지만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이 사건이 전해질 것”이라고 그 여인의 헌신을 차별해서 칭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밤에 찾아왔을 때 “너는 유대인의 성경 선생인데 이것도 모르냐? 거듭나지 않으면 길이요 진리인 나를 알아 볼 수 없고 아버지께로 갈 수 없다” 라고 박대하셨지만, 5번 남편이 바뀌고 7번째 남자와 동거 중이던 사마리아 수가의 여인에게는 “네 말이 맞다” “네가 사실대로 말하였다”면서 친절한 말로 사람 차별 하셨습니다 (요한 3~4장)


예수님은 제자 빌립를 위해서는 오병이어 기적을 베풀어 주셨지만, 이틀이나 걸려 예수님을 좇아온 무리에게는 “너희들은 생명의 양식이 아니라 빵 때문에 왔다” 라고 그들을 정면에서 차별하셨고 ‘헷세드’ 사랑을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요한6장)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는 많은 비유(=예화)를 들어 알아들을 수 있는 데까지 가르쳐 주셨고(마가복음 4:33) 설명해 주신 후에도 “다 알아 들었느냐?”고 거듭 물으셨지만, 선택되지 않은 자들 귀가 닫힌 자들에게는 비유로만 말씀하신다면서 “그들에게는 하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라고 정말 심하게 사람 차별하셨습니다(마태 13).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새벽 닭 울기 전 나를 세번 부인할 것이다”라고 미리 경고했고, 이 일로 실망해서 귀향했던 베드로에게 다시 나타나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쳐라”고 3번이나 간곡히 당부하셨지만, 유다가 배신할 때 “네 할 일을 하라”는 짧은 말로 멸망의 길로 가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심판 자리에서 살면서 교회에 기여한 일이 생각나지 않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내가 굶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 너희 집으로 맞아들였고 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 간호해 주었으며 갇혔을 때 찾아 주었다”(마태 25:35~40)고 그들을 기억하시지만

교회에 크게 기여했다고 굳게 확신하는 사람들이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말할 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마태 7:22~23)면서 심판날에 있을 마지막 차별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침에 온 사람이나 저녁 닫기 전에 온 사람이나 똑같은 상급을 주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하늘나라 입장 시에 불리하게 차별 당할 수 있다 라고 설명하시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까 걱정하던 제자들을 안심시켰지만,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더 심한 차별이 하늘나라에 있다고 말하셔서 ‘목숨 걸고 믿는다’고 자부하던 바리새인들을 성나게 만들었습니다 (마태 20)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한결같은 예수님(히13:8)은 구약에서도 사람 차별 많이 하셨다고 성경에 나옵니다


하나님은 애굽 군대 수만명을 홍해에서 수장시켰지만 히브리 노예들은 머리털까지 지켜 주셨고, 가나안 족속에게는 회개할 기회를 주지 않고 진멸시켰지만, 거듭 범죄했던 이스라엘에게는 회개할 기회를 수 없이 주셨고 오늘날까지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계십니다


“헤세드” 사랑의 하나님은 태어나기도 전에 “에서가 야곱을 섬기리라”고 선언해서 원천적으로 하나님께 잘 보일 수 있는 기회를 차별적으로 박탈했지만, 야속하게도 평생 사기꾼 노릇을 한 야곱을 차별해서 끝까지 대우하셨는데 사도 바울은 그런 차별을 은혜라고 예정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이웃의 아내를 탐하고 사람을 죽였던 다윗에게는 회개할 기회를 주셨지만(시편 51), 여호와를 가볍게 여기고 귀신을 따라 갔던 사울의 집안에 대해서 엄격히 차별해서 심판하셨습니다


“헤세드” 사랑의 하나님은 잠깐의 실수로 궤를 붙들었던 웃사를 여러 사람이 보는 자리에서 즉사시켰지만 (사무엘하6), 정작 그 일을 명령했던 다윗은 아무 해가 없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명품 옷 한벌을 숨기고 거짓말 했던 아간의 집안을 멸했지만,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이 거짓말 했고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빵을 먹었는데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마태 12)


하나님은 창세기의 영웅 요셉에게서 메시아의 족보가 나오지 않게 하시고, 며느리를 창녀로 알고 상간했던 유다를 통해 메시아의 족보가 나오게 해서 불공평한 대우 차별적 대우가 하나님 뜻 안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살인교사와 간음죄를 저지른 다윗에서 메시아 족보가 나오게 했고, 아들 솔로몬의 배도를 미리 아셨지만 성전 건축을 허락하셔서 다윗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셔서 그 집안을 차별해서 불공평한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주변 국가 모두를 심판하셨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스라엘을 차별 대우하셔서 계속해서 회복시켜 주셨고 예루살렘으로의 귀향까지 약속하셨고 이를 실현시켜 주셨을 뿐 아니라 마침내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탄생 며칠 후 요셉과 마리아에게 애굽으로 도망가라고 천사를 보내 알려주셨지만 그 고급 정보를 듣지 못한 베들레헴의 두 살 아래 사내아이들 모두 헤롯의 군대에 의해 억울하게 학살 당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강남 아파트 팔아서 교회에 큰 헌금을 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한 날에 죽게 하셨지만,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 섰고 교회를 열심으로 핍박했던 바울을 특별 대우하셔서 사도로 삼으셨을뿐 아니라 신약에서 (11 제자들을 앞질러)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차별 금지/폐지 주장은 오늘 현재의 조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서민이 차별 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강남 부자의 집값 올리기를 때려 잡겠다는 정책 때문에 그동안 오른 적이 없던 경상도 집값이 무섭게 오르고 전라도 시골 동네 서민의 등골이 휘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차별 없는 평등한 지상낙원을 목숨 걸고 탈출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차별 많은 나라로 가려고 합니다

차별 없는 평등한 교육을 외치는 조국 사회의 많은 지도층은 자기 자식을 차별 많은 교육으로 유명한 나라로 유학 보냅니다

차별 철폐를 외치는 교회에서 담임목사님이 훨씬 더 많은 보수를 받고 혜택을 누립니다

차별 철폐를 외치는 교회에서 목회자 초빙 시 영미 유럽의 학위를 더 높게 평가합니다

차별이 없어야 할 교회에서 집사보다 장로가 성도보다 집사가 더 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하위 계급을 거치지 않으면 상위 계급으로 올라갈 수 없다고 가르쳐 계급 의식을 부추깁니다


혹시 예수님이 오늘 조국 교회에 나타나신다면, “차별하지 않는 아름다운 삶”을 외치는 우리들에게 “교회(혹은 회사)부터 지금 당장 오늘 이 시각 차별없이 평등하게 보수와 혜택을 누리게 하고, 집사 장로 권사 모두 2년마다 원하는 사람 모두 나이, 성별, 학력, 출신 등에서 차별 없이 골고루 돌아가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일할 수 있게 한 다음 다른 교회에게 그렇게 하라고 권하십시오”라고 말하실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 남서울교회부터 차별 없는 보수와 혜택을 넉넉히 주고, 원하는 사람 누구든지 차별 하지 말고 원하는 대로 직분을 감당하게 하는 아름다운 제자들의 공동체를 만드는 실험을 해 본 다음, 남들에게도 그렇게 살라고 권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년 초부터 이렇게 당장 실행에 옮기면 내년 요맘 때에는 에베소에 나오는 차별 없는 공동체의 의미를 마음으로 깨닫게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결단하고 실행에 옮길 때 요한계시록울 주셨던 예수님은 우리에게 “잘 하였도다 충성된 종아. 남에게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산상수훈의 주제를 아주 잘~ 이해하고 있구나!” 라고 크게 반가워 하실지 모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이름
공지 사진을 본문에 넣는 방법 file 2020.05.24 관리자
공지 [공지] 스마트폰>파일첨부 기능 추가되었습니다. [2] 2014.09.12 관리자
공지 광고글, 광고성(교회포함) 글, 비방글, 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2014.07.18 관리자
1438 2021. 01.17 .[엡4:17~ 20] [1] 2021.01.17 김오진
1437 20210116 매일성경 누가복음 6장 12-26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1] 2021.01.16 안봉균
1436 2020~2021 송구영신 예배 file 2021.01.15 남서울교회
1435 오우현 장로님의 글 2021.01.15 김용재
1434 행함이 있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 야고보 사도 2021.01.15 김용재
1433 故 오우현 장로님 장례에 오심을 깊이 감사드리며... 2021.01.15 배정은
1432 다보탑앞에서 고등학생이 던진 질문 2021.01.12 안예준
1431 세번째로 가장 많이 오해 되고 있는 야고보서 2021.01.11 김용재
1430 분량 끝까지 먹어야 자라는 믿음 2021.01.10 김용재
1429 조국교회 없이 바울이 되어 읽어 본 에베소서 2021.01.08 김용재
1428 왜 에베소서에서 차별금지를 부탁하지 않았을까요? 2021.01.08 김용재
1427 사건파일 #1994 2021.01.07 안예준
1426 자본주의는 창세 전부터 배격 대상이었을까요? 2021.01.07 김용재
1425 옛날이야기 2021.01.06 안예준
1424 교회의 크기와 장성한 분량의믿음은 비례할까요 2021.01.05 김용재
1423 PERFECT [1] 2021.01.04 안예준
1422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늦게 만난 바울의 간증--에베소서 [1] 2021.01.04 김용재
1421 2020년 직분자 은퇴식 file 2021.01.02 남서울교회
1420 굴러온 돌이 체험한 예수님에 대한 간증--에베소서 2020.12.31 김용재
1419 사람 차별하면 구원 받지 못하나요? 2020.12.30 김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