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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울 톡톡
세상 많은 사람이 차별 없는 사회를 이야기하면서,
Karl Marx가 말했던 계급 없는 따라서 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를 말합니다.
아마도 Marx는 모든 개인은 똑같은 역할을 감당할 수 있고
따라서 계급은 당연히 타파 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가르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기록되었던 수 천년 동안에
Marx가 타파하기 원했던 계급은 계속 존재했었습니다.
그리고 신약 구약 모두에서 “공동체 내에서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거나
“예수님이 세상에 재림하는 날 차별이 없어질 것이다”라고 말한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에베소서를 비롯해서 신구약 모두에는
하나님의 공동체 내에서 각자가 맡은 역할이 다르고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질서 아래 계급 관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나아가 교회에 속한 각자는 하나님을 위해 계급을 인정하고 복종하라고 가르칩니다.

예를 들어 베드로는 “아내들아 남편들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했지만
조국교회에서 이 사도적 진리에 관한 설교를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도들은 로마 제국의 큰 축을 담당했던
그리스도인 노예들에게
“Marx가 가르친 계급 타파를 위해 일어나 투쟁하라”라고
가르친 적이 없고 대신
“노예들아 예수님이 하나님에게 복종했듯이 주인들에게 복종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왠일인지 조국교회에서는 이 사도적 진리는 완전히 무시되고
대신 직장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정의를 위해서 투쟁하고 싸우라는
성경과 연관 없는  주장을 듣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도들은 그리스도 인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세상의 권위에 복종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이런 “계급 타파” 혹은 “차별 금지”와
완전히 반대되는 ‘사도적 진리’는 구약에서도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노예로 팔려간 요셉을 총리로 만들어
이스라엘이 400년 동안 애굽으로 노예로 지내는 기간을 열게 하셨습니다.
다니엘, 느헤미야, 에스라는 포로로 잡혀간 나라의 지배자에게 순종한 결과
그들의 친구가 되었고 결국 예루살렘 귀환이라는 하나님의 예언을 이루는 과정에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는 노예였지만 노예로 살지 않았고,
지배자들의 신하였지만 지배자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진행된 역사였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주인공 예수님 역시 구약의 인물들처럼
권위에 복종하고 계급을 인정하는 유명한 발언을 하셨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라는 말에는
그리스도인이 세상 권위에 복종하고 처신해야 할지가 요약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냥 맹종하라고만 했을까요?
산상수훈을 읽어보면 그 답이 나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사역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는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율법학자의 이중성을 꾸짖으셨지만
그들이 가르치는 메시지가 틀렸다고 공격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가르침을 따라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속했던 계급 때문에
그 문제가 생겼다고 공격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예수님은 그들의 죄 즉 그들의 위선을 공격하셨습니다.
Karl Marx는 사회 문제를 계급 투쟁으로 설명하고
계급 타파와 차별 금지로 풀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인간의 죄가 문제의 근원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신구약 어디에서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차별 금지해야 합니다
라는 주장이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문제의 원인을 차별에 놓고
차별을 금지나 타파에 노력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은
성경과 관련 없는 주장일 것 같습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문제의 근원은 우리의 죄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또 차별은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차별 타파를 위해 우리 속에 태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속에 오셨다고 성경에 거듭 거듭 나옵니다
우리의 신앙을 시작하고 하고
우리의 신앙을 온전하게 해 주시는 예수님을 매일 아는 것으로 저는 너무 충분합니다
번호 제목 날짜 이름
공지 사진을 본문에 넣는 방법 file 2020.05.24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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