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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울 톡톡
에베소 교회에서는 어떤 문제가 인해 무슨 갈등이 발생했을까요? 왜 사도 바울은 신약에서 가장 어렵게 보이는 이 짧은 서신을 적었을까요?

무엇보다 에베소 교회는 현재의 남서울교회와 너무 많이 달랐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겪었던 문제를 남서울 교회에 적용하려면 신약에 나온 에베소 교회에 대해 어느 정도 조사해 보아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거의 3년 동안 머무르면서 교제를 나누었고 성경을 가르쳤던 교회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마지막 로마로 가기 전에 장로들을 불러서 장로 가운데 배반자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를 주었을 정도로 바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던 교회였습니다

에베소에서 머문 시간이 다른 어느 교회보다 길었던 만큼 바울은 많은 사람과 교제하고 가르칠 수 있는 시간을 보냈고 따라서 기초적 믿음에 대해 길게 적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에베소서 내용은 다른 목회 서신과 달리 
기초적인 내용을 뛰어 넘는 어려운 내용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남서울 교회 교인을 포함한 너무 많은 독자에게 어려운 서신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이 서신을 신약의 알프스 (가장 높은 봉우리 가운데 하나... 제일 높은 봉우리는 물론 요한계시록이겠지요?) 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에베소 교회 교인들은 3년이나 바울과 교제했었기 때문에 서신에 나온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유명했던 초대 교회에서는 예수님에게 직접 훈련 받았고 구약을 잘 알고 있었던 사도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먼저 에베소라는 도시는 아시아에서 제일 큰 로마제국의 도시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바다에 인접한 로마제국의 항구 도시였구요! 
에베소 교회는 그 도시에 살던 유대인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점차 이방인의 수가 늘어나면서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긴장감이 생겼고 점차 이들 사이에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 갈등이 생겼습니다

이런 갈등이나 논쟁이 생기면
예수님이 유대인으로 태어나셨으니까 (유대인의 왕이셨으니까) 유대인들은 당연히 자신들 견해가 더 옳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방인 기독교인들은 구약과 당시 교회에서 읽히고 있었던 복음서 및 소수의 사도들의 편지에 비추어 자신들의 견해를 가질 수 있었겠지요 그래서 어떤 사안들에 대해서는 다르게 생각했고 서로 충돌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 내에서 서로 간에 알력과 분열이 생겼고 교회의 누군가가 이 문제를 로마에서 가택 연금 상태에 있던 바울에게 급히 알렸고 (사도행전 28장) 바울은 결국 이 문제를 위해 기도했고 (에베소 1장)  이 교회 문제를 해결하라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편지의 독자는 기독교인이 된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2000년 후에 자신의 이 서신을 놓고 독자들이 6개월에 걸쳐서 매주 천천히 천천히 한 줄 두 줄 씩 분석해 가면서 읽을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조금이라도 예상 했을까요? 저는 아직까지 그런 편지를 써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에베소 서를 읽다 보면 그곳 교회 사람들은 대부분 적극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 적극적이어서 많은 수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잘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너무 적극적이어서 다른 사람의 역할을 내가 감당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지나치게 적극적이어서 다른 사람 대신 내가 지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에베소서 행간을  살펴 보면 그렇게 결론이 나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서 그런 문제가 일어났다고 적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그렇게 사명감이 넘친 분들이 넘쳐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요한계시록에서 에베소 교회는 예수님의 질책을 가장 덜 받았습니다. 첫 사랑은 잊어버렸을지 모르지만 다른 공적이 많아서 예수님이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냥 질책만 받았던 다른 교회와는 확실히 다른 수준의 교회였습니다. 그런 수준 높은 교회에 보낸 편지였기 때문에 결국 로마서 보다 훨씬 더 읽기 힘든 서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행스럽게 분량은 짧습니다!)

이렇게 신약 이곳 저곳에 나온 기록과 에베소서 자체에 나온 기록에 비추어 볼 때
에베소 교회 교인이 교회에 참여하지 않고 수동적인 자세로 지내거나
혹은  자기 역할을 발견하지 못하고 봉사할 수 있는 영역을 찾을 수 없어서
문제였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구절을 에베소서 본문에서 찾아 볼 수 없읅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만약 그런 수동적인 교회였다면
사도 바울이 그런 문제를 그냥 넘어 갔을 리 절대 없었을텐데
에베소 서에는 그런 언급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고린도 전후서에 나왔던 바울의 불 같은 성질 잘 아시지요?)

대신 바울은 교회에서 각자 맡은 역할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어떻게 달라야 할지에 대해서 왜 달라야 할지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달라야 한다면 모두 예수님을 위해서이고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면 역시 예수님을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같은 성령 한 분의 세례를 받았고
우리는 같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며
우리는 같은 은혜를 고백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대로의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대로의 차별과 상하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이런 바울의 권고를 오늘날 남서울 교회에 적용하려 한다면
우리 각자가 어떤 일을 할 때
우리 각자가 얼마나 예수님을 잘 알고 일하는지
제일 제이 제삼으로 중요하다는 말이 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요한 15:5)

만일 우리가 오늘 아무리 남에게 공평하게 대하고 차별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더라도,
예수님을 중심에 두고 기억하지 못하면서 그 행위를 했다면
우리 행위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가 될 수 있다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반대로 (차별 타파/ 계급 타파 같은)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만약 예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다면
예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거기에 다른 조건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원칙을 자신의 유명한 말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교회마다 돌아다니면서 간증하곤 했는데
이 사도 바울의 간증에 너무나 익숙했던 에베소 교회 교인이라면
절대로 수동적이거나 눈치 보며 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그들 속에 살아 계신 예수님이
그들을 절대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요한계시록 2장에 나온 것처럼 에베소 교회는
(목회자를 특별 "차별" 대우해야 한다는) 니골라 당의 범죄를 몰아냈고
가짜 복음 이단 척결에 앞장섰다는 칭찬을 예수님에게 들었습니다

그런 교회에서 수동적이고 남의 눈치만 보는 그런 한심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성경 기록을 읽으면서 저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첫 사랑은 잊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망가진 상태가 아니었고
7 교회 가운데 그나마 가장 훌륭한 교회였습니다

그런 에베소 교회를 현재의 남서울 교회와 똑같다고 비교할 수 있을까요?
에베소 교회에서 일어났던 일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에베소 교회에서 사도 바울은 거의 3년에 걸쳐
두란노 서원에서 성경 공부/강의를 인도했다고 합니다 (사도행전 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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