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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오래 다녔던 분에게는 교회라는 단어가 익숙하지만 에베소서를 읽는 에베소 교회 교인에게 교회란 단어, 예수님, 하나님, 성령님 그리고 구약 이 모든 것이 다 새로웠습니다. 이방인이었던 그들에게 이 모두가 다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 새로운 세계, 새로운 변화에 대해 설명합니다. 특히 "교회"라는 용어가 그랬습니다

조국 교회에서는 잘 설명해 주지 않지만, "교회"라는 단어는 구약에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 검색해 보면 이 단어는 마태복음 16,18장에 처음 나오고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6:18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마태복음 18:17
그러나 그 형제가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여라.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 사람이나 세리와 같이 여겨라."

딱 2번 나왔기 때문에 사도들은 예수님 부활 이후 교회에 대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복음서에 의하면, 그들에게는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주어졌고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사마리아를 거쳐 아시아 그리고 나중에 로마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복음을 알렸습니다. 사도행전은 이런 사건을 정리해서 보여 줍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사도행전은 사도 바울을 너무 부각 시켜 주인공처럼 보여주기 때문에 차별 철폐를 외치는 많은 분들의 가슴을 오늘도 저리고 아프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쨌든 어렵게만 보이는 에베소서를 쉽게 이해하려면 사도행전에 나온 바울을 알아야 합니다. 반대로 에베소서를 아주 어렵게 읽고 기억에서 바로 지워 버리려면 사도행전과 연결시키지 않고 읽으면 됩니다.

사도행전 7장~9장에서 사울은 예수님의 원수로 교회를 핍박했기 때문에, 자랑할만한 공동체 경험이 전혀 없었고,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정규 신학교를 다니지도 못했고, 공동체의 형님, 동생, 누님과의 커넥션이 전무했으며, 공동체의 뛰어난 스승과 교감이 있었을 리 없고, 공동체 출신이 많이 가는 해외 유학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는 공동체의 적이었고 공동체가 기도하기를 포기한 대상이었다고 나옵니다. 바울은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이는데 가담한 폭도들의 옷을 맡아 줄 정도로 적극적 가담자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나온 "사도가 될 자격이 없고 꼴찌 중에 꼴찌"라는 그의 고백은 정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내용이 에베소서 2장에 나오는 내용의 기초가 됩니다. 나중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의 크기를 누구보다 더 확실하게 체감하게 되고 자신의 이야기를 에베소서 2장에 간증으로 남깁니다. 에베소서 1~3장은 바울 자신의 간증이지만 바울은 오늘 우리가 간증집회에서 듣는 것처럼 떠들썩하게 자신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에베소서 1~3장에 나온 내용이 바로 바울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바울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교회를 핍박 하는데 열심이었던 바울은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 있는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가던 중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이 사건 이전에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핍박할 기회가 없었는데 예수님은 자신이 바울에게 핍박을 받았다고 말이 안 되는 주장을 하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그 날 처음 하신 그 말을 잊지 않고 있다가 나중 에베소서, 고린도전서를 쓸 때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소개합니다. 따라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란 설명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인데 이 말은 예수님이 교회를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신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저 무덤덤하게 그런가 보다 귀찮아하면서 듣지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라고 말 하시는 예수님의 표정과 음성은 정말 심각하고 슬픔에 가득 차있었습니다. 바울이 그날 처음 만났던 처음 들었던 그 예수님의 음성과 표정을 평생 잊어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날 예수님의 모습은 그렇게 사도 바울의 마음에 각인되어 버렸습니다. 평생 사도 바울의 마음 속에서 예수님은 그렇게 살아 계셨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도 바울의  간증은 예수님의 말인데, 요한복음 15장에서 사도 요한은 믿는 우리 모두를 예수님의 가지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고 전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고린도전서에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던 설명과 똑 같습니다. 모두 예수님이 직접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지체이고 예수님께 속했기 때문에 우리가 핍박 받을 때 예수님도 핍박을 받고, 우리가 기뻐할 때 예수님도 같이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바울은 에베소서에 적었습니다. 바로 사도행전 8장에 나온 사도 바울의 체험담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왜 사도행전을 빼고 어렵게 어럽게 기억 나지 않게 에베소서를 읽어야 하는지 사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 요한복음을 애써 무시하면서 에베소서를 읽어야 하는지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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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사진을 본문에 넣는 방법 file 2020.05.24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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