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용하고 계신 브라우저는 오래되었습니다.
알려진 보안 취약점이 존재하며, 새로운 웹사이트가 깨져 보일 수도 있습니다.
최신 브라우저로 업데이트 하세요!
오늘 하루 이 창을 열지 않음
남서울 톡톡

성경에는 조국 교회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글 나온 그대로 따라 읽어 보았습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란 하나님이 이방인을 위해 창세 전부터 계획하셨던 비밀이라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누구나 그분의 아들로 초청되었다는 것 (요한복음 1:18), 그리고 그 증거로 성령님을 보내셨는데 그렇게 해서 (1) 창세 이전에 보기에 좋았던 모든 것 (조국교회에서 특별 혐오 증오 대상인 자본주의까지 포함)을 예수님의 통치 아래 놓이도록 하고 (2) 예수님의 지체로 선택된 각자를 교회로 부르셨고 그 교회를 예수님이 가득 가득 가득 가득 채우신다고 적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1장에서 말한 교회는 예수님이 충만한 곳이라고 합니다. 아주 어려운 말처럼 들리는데요...??? 그렇죠?


그 교회 사람 만나면 그 사람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지고, 그 사람과 말을 나누면 예수님을 짐작하게 되며,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 기독교인의 신앙에 대해 느끼게 됩니다.


그 교회 목사님 설교 들으면 지겨울 정도로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그리고 자세히 해서 결국 그런가 해서 집에 가서 성경 읽어 확인해 보게 됩니다. 교회에는 무슨 일인지 몰라도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들이 들끓고 있고, 예배 끝나고 나가 보면 예수님을 알리고 싶은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모여 즐겁게 이야기하는, 바로 그런 예수님이 충만한 교회인데요 그런 교회의 머리가 예수님이라고 사도 바울은 1장에서 설명합니다


그게 창세 전부터 감추어왔던 하나님의 비밀이었는데, 이제 하나님은 자본주의를 비롯한 모든 창조물을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 아래 복종시켜 완전한 통일(절대 남북 통일과 같은 저급한 세상적인 것과 혼동하면 안됩니다)을 계획하셨다고 1장에서 설명합니다 (유명한 공동체 출신이 아닌 바울이 어떻게 이런 비밀을 알 수 있었을까요?)


에베소서 2장에서 바울은 에베소서 교인들이 어떻게 유대인들에게만 허락되었던 아브라함 공동체에 편입되었는지를 부연 설명합니다. 이건 이방인들에겐 세상의 어떤 로또와도 비교 불가한 횡재이고 어마어마한 사건이라고 하면서, 이 약속은 처음 유대인에게 주어졌지만 이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새 생명 주심을 믿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 열려서 에베소 교인과 같은 이방인 (그러니까 남서울 교회 교인들이겠지요?) 더 이상 진노의 자식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2장에서 이스라엘 공동체, 유대인과 에베소 교회의 이방인 성도를 대조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유대인, 이방인 두 그룹사이에 어떤 갈등이 있었고 교회의 누군가가 로마에서 가택 연금상태에 있던 바울에게 교회의 내분을 알렸습니다(사도행전 28장). 혹시 남서울 교회에서도 성도들 그룹 사이에 내분이 나면 구역 목사님이나 장로님이나 담임 목사님에게 솔직하게 알릴 수 있을까요? 알리고 있나요? 그렇게 하면 에베소서와 같이 예수님으로 충만한 서신을 받게 될까요? 이렇게 상상하면서 에베소서를 읽으면 아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두 그룹 사이의 내홍을 구체적으로 적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2년 이상 머물면서 성경을 가르쳤던 교회였고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에게서 그나마 칭찬을 받았던 에베소교회였으니까 그 싸움의 수준이 고린도교회보다 고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주 점잖게 이방인을 부르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라고 2장에서 그들을 설득합니다. 예수님은 이방인과 유대인을 통일, 즉 하나로 만들기 위해 오셨다는 점과 성령님이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연결시킨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모두 예수님의 같은 지체임을 강조합니다 (혹자는 어리석게도 '통일'이라는 단어에 천착해서 에베소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만물 통일을 남북 통일이라고 비약시켜 주장하는데, 에베소교회의 유대인과 이방인 신도 그룹 중 한 그룹이 다른 그룹을 갑자기 쳐들어가서 집단으로 장기간에 걸쳐 학살하고 재산을 빼앗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비교불가이며 적용불가능한 사안을 똑같다고 억지로 해석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런 분들에게 즉시 "정신 나갔습니까? '살인한 자는 죽여야 한다'는 계명은 잊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을 어찌 잘못 적용합니까?" 라고 질책할 것입니다)


2장에서 이방인 성도에게 유대인 성도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 것을 당부한 바울은 3장에서 자신의 현황을 알립니다. 개인적으로  교회에서 이런 간증을 자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담백하고 간증 뒤에 있는 하나님 바울이 알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끝낸 후, 바울은 평소 기도 내용을 편지로 적습니다. 내가 감옥에 갇혀서 이렇게 어려운 형편에서 편지를 쓰는데, 멀리서 이렇게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예수님 안에서 화평하고 하나가 되기를 힘써 주세요!. 그런 내용인 것 같습니다…


4-6장은 1~3장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계획을 알고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자가 어떻게 행할 것인가에 관해 말합니다


바울은 다른 목회서신처럼 하나님의 은혜(=예수님)를 먼저 설명한 다음 (1~3장), 다시 말해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하셨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자세히 설명한 다음, 그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계획까지 이해했으니 이제부터 이렇게 사십시오 라고 4장에서 6장에서 권합니다


이런 바울의 설명 방식은 바울 서신에서 (아마 빌레몬서를 빼면? 로마서까지 포함해서) 매번 똑같이 반복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하고 그 다음에 은혜를 받았으니 당신이 성령에 이끌려 이렇게 저렇게 예수님의 사람이 되어 행동이 바뀌어야 할 겁니다....이런 식으로 전개 됩니다


그 행동 원칙의 중심에는 항상 예수님이 있고 예수님을 보내신 하니님이 있는데,  바울은 성령님의 도움으로 은혜(=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깨달았기 때문에  비로서 행동할 수 있다고 설득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알기 때문에 자연스런 행동이 나옵니다.  야고보 사도는 그런 행동이 나오지 않은 경우는 "죽은 믿음"이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증표라고 야고보서 2장에서 지적했습니다. 또 갈라디아서 5장의 성령의 열매란 결국 이렇게 예수님의 가지가 되어 변화된 사람에게서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4장에서는 너무 의욕에 넘쳐서 열심히 일하다가 서로 다투고 있는 교회의 각 지체로서의 역할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교회의 머리인 예수님을 위해서 서로 협력하라고 권하는 것 같습니다. 4장 내용을 읽어 보면 그들이 선한 뜻으로 열심히 일하다가 다투게 되었기 때문에 갈라디아 교회나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처럼 심한 말로 견책하지 않고,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입장에서 예수님처럼 행동해 보라고 권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그만큼 성숙한 교회였습니다. 왜 바울이 1장에서 그 어려운 충만 충만 충만을 그렇게 반복했는지 여기서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에게서 꽉 차면 헛 소리 하지 않게 되고, 헛된 목표 쫓지 않게 되며 예수님을 위해 사는 지체가 된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아마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긴장, 갈등, 싸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위해 그러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5장 6장에서는 다른 바울 서신처럼 교회에 다니는 개인, 가정, 사회적인 이슈들, 그리고 사도 바울의 개인적 권고들이 나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말하는 소위 "사도적 권고"이고 예수님의 말씀처럼 권위를 인정 받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정의롭지 못한 직장에서 싸우다가 사표 쓰고 나오라"는 없습니다. 그런 주장은 바울 서신 어디에도 나오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 이야기는 몇 번 더 나옵니다. 또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하면서 남녀가 사회적인 풍조에 휩쓸리지 말라고 합니다. "차별하면 안됩니다"는 자주 듣지만 "남녀 사이에 정조는 중요합니다"는 결코 듣지 못하는 조국 교회는 야고보 사도가 살아 있다면 즉각 "왜 하나만 중요하게 말하고 다른 하나는 개무시합니까?" 이런 지적을 당할 것 같습니다


6장에서 사도 바울은 의로운 일을 하다가 로마에서 가택 연금(편한 감옥)에 있던 자신이 공중의 권세 잡은 세력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원래 (자본주의를 포함한, 계급, 질서 하나님이 만든 모든) 세상은 보기에 좋았는데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로 인해 정의가 없고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옥에 갇히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저들과 싸우기 위해서 성경을 벗어난 이상한 가르침에 흔들리지 말고 "직장 상사와 싸우라"고 가르치는 상 풍조를 따라가지도 말고 성경(=구약!!!) 열심히 보라고 권합니다. 그렇게 바울은 예수님의 군사로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하수인들과 "말씀으로" 싸우라고 권합니다


결국 저는 조국 교회를 염두에 두지 않고 그 어렵고 어렵다는 에베소서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모르는 부분이 있지만 예수님이 약속하셨던 성령님이 이번에도 잘 도와 주신 것 같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이름
공지 사진을 본문에 넣는 방법 file 2020.05.24 관리자
공지 [공지] 스마트폰>파일첨부 기능 추가되었습니다. [2] 2014.09.12 관리자
공지 광고글, 광고성(교회포함) 글, 비방글, 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2014.07.18 관리자
1438 2021. 01.17 .[엡4:17~ 20] [1] 2021.01.17 김오진
1437 20210116 매일성경 누가복음 6장 12-26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1] 2021.01.16 안봉균
1436 2020~2021 송구영신 예배 file 2021.01.15 남서울교회
1435 오우현 장로님의 글 2021.01.15 김용재
1434 행함이 있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 야고보 사도 2021.01.15 김용재
1433 故 오우현 장로님 장례에 오심을 깊이 감사드리며... 2021.01.15 배정은
1432 다보탑앞에서 고등학생이 던진 질문 2021.01.12 안예준
1431 세번째로 가장 많이 오해 되고 있는 야고보서 2021.01.11 김용재
1430 분량 끝까지 먹어야 자라는 믿음 2021.01.10 김용재
» 조국교회 없이 바울이 되어 읽어 본 에베소서 2021.01.08 김용재
1428 왜 에베소서에서 차별금지를 부탁하지 않았을까요? 2021.01.08 김용재
1427 사건파일 #1994 2021.01.07 안예준
1426 자본주의는 창세 전부터 배격 대상이었을까요? 2021.01.07 김용재
1425 옛날이야기 2021.01.06 안예준
1424 교회의 크기와 장성한 분량의믿음은 비례할까요 2021.01.05 김용재
1423 PERFECT [1] 2021.01.04 안예준
1422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늦게 만난 바울의 간증--에베소서 [1] 2021.01.04 김용재
1421 2020년 직분자 은퇴식 file 2021.01.02 남서울교회
1420 굴러온 돌이 체험한 예수님에 대한 간증--에베소서 2020.12.31 김용재
1419 사람 차별하면 구원 받지 못하나요? 2020.12.30 김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