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켈러의 왕의 십자가』를 읽고서
2015.06.10 18:23
『팀켈러의 왕의 십자가』를 읽고서
작성자: 남서울교회 771 목장 윤종안 집사
1. 예수님의 세례식 장면(막 1:9~11)에서 마가는 삼위를 모두 언급하였다. 삼위일체의 신학이
가르치는 것은 한 분 하나님이 계신데, 서로 알고 서로 사랑하는 삼위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서로 상대방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상대방을 찬양하고 높인다.
하나님은 기쁨을 ‘얻기”위해서가 아니라 ‘주기’위해서 우리를 지으신 게 분명하다.
☞ “하나님은
우리를 춤 속으로 초대하기 위해 창조하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다윗이 언약궤 앞에서 뛰놀며 춤을
춘 것」(삼하 6:13-15)을 상기시킵니다.
2. 기독교와 여타 종교의 결정적인 차이점을 이렇게 말한다. 여타 종교의 본질은 조언(advice)이다.“신과 영원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신 앞에 설 자격이 있다.” 하지만 기독교의
본질은 소식(news)이다. “성경의 사건은 역사 가운데
일어났으며, 복음의 메시지는 예수님의 삶이며 죽음이며, 이로써
당신이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연결되시되,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또는 안 했는지)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역사 속에서 이루어 주신
것에 대한 소식이다. 바로 이 점이 기독교가 다른 종교나 철학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복음은 우리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길을 획득할 필요가 없다는 소식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나를
따라오너라. 나를 가장 중시하고 나만 믿으라. 내 뒤에 딱
붙어 따라오너라. 되돌아가지 말라. 포기하지 말라. 실패하고 불의를 겪을 때마다 나를 의지해라.”
☞ 고통 중에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굳게 지켜주는
글입니다.
3. 성경은 죄를 나쁜 행동만을 말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 - “내 인생이니 내 맘대로 살겠어.”- 이 가장 큰 죄다.
☞ 전도폭발훈련 복음제시의 <인간> 「죄의 정의」와 같은 내용입니다.
☞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것(삼하 11장)도 ‘잠시 하나님을 무시한 것’때문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 죄의 대가는 너무도 컸습니다.
4. 모든 종교의 이면에는 공통된 논리가 있다. 내가 잘해야 비로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복음은
이 논리와 완전히 정반대 입장을 취한다. 먼저 예수님이 나를 온전히 받아 주셨기 때문에 내가 순종하는
것이다. 크리스천의 삶에서 하나님의 법은 비록 구속력이 있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다. 우리 자신에게 매몰되는 대신에, 하나님과 사람들을 어떻게 섬길 수
있는지 가르쳐 준다. 하나님의 법을 공부하고 순종하는 것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죄의 결과로부터 구속해
주신 분을 기쁘게 하고 닮아 가기 위해서이다.
☞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라고 한 딕 루카스 목사의 설교는 참으로 좋은 예화입니다.
5. 우리는 어떠한 외적인 해법(노력)으로는 우리의 영혼을 다룰 수 없다. 모든 도덕과 선행은 마음까지 뻗어 가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께 죄의 옷을 입히셨다. 우리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십자가의) 보혈뿐이다.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을 그린 도메니코 페티의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그림
밑에 있는 글귀 “내 너를 위해 이 모든 일을 했는데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려느냐? 지금 예수님이 우리 모두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지 않겠는가?
☞ 모리비안 교회의 창립자인 17세기 독일의 니콜라스 폰 진젠도르프 백작의 회심 이야기는 감동적입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이윤재 목사님의 저서‘사랑은
어디에서 오는가 (29) 뷔르츠부르크의 <에케 호모>’를 읽어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