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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울 톡톡

 

No 896과 연장선상에서 이어지는 글이다

 

나는 늘 1957년 반공전람회에서 자신이 행운아로 명명(命名)받았던 그 행운이 한번 지나가는 눈방울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한 번쯤 행운을 경험할 것인가 연상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순천 자애원에서 총무 직을 사임할 때는 막노동으로부터 시작할 각오였다. 서울역에 내리자 네온사인은 찬란한데 마음은 더 무겁고, 어두운 느낌이 짓눌렀다. 가방끈이 너무 짧았기 때문에 각 회사에서 직원 모집 광고한 응시에는 아예 외면하고 소위 비정규직 회사를 노크하면 일정액의 입사보증금을 요구했다. 준비한 보증금도 없으려니와 보증금 사기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은 미리 알고 있기에 이러저러해도 다 불가능했다.

 

창신동에 사는 친구 매형을 찾아가 막노동 일자리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해서 건축공사장엘 출근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이 합숙하는 숙소를 들어가서 자려니 고약한 남자들 냄새가 너무 역겨웠다. 그걸 적응하는 데도 5일 정도였다. 아침 일곱 시에 나가면 해진 후에 일과를 마치는 데 노임은 당일에 주는 것이 아니고 약 일주일 만에 받게 되었다. 하는 일은 건축 기반공사장의 암반을 깨부수는 일, 벽돌이나 모래, 자갈을 등에 지고 2,3층까지 운반하는 일인데 15일정도 하고보니 허리는 끊어질 듯, 손발이 부르터서 도저히 노동은 할 수 없는 자임을 자인하게 되었다. 건축물 언덕배기에 좋은 개의 집에서 흰 중개(中犬) 한 마리가 쉬고 있는 데 인생 비운의 시구(詩句) 가 머리에서 감돌았다. 이태원2동 언덕마을에 7촌 숙모님이 계셨다. 그곳을 찾아 한평 남짓한 사글세방을 구하였는데 어느 날, 밖에서 귀가하니 순천 자애원원장이 그 방에 와서 누워있었다. 미안한 감을 느꼈는지 자전거를 한대 사주면서 활동해보라고 하잖는가. 하나님께, 자애원 원장에게 감사했다. 다음날부터 남대문시장 오징어 도매상회에서 커다란 바위만한 오징어뭉치를 도매하여 그것을 20마리 묶음으로 나누면 40다발이 되었다. 그걸 자전거에 싫고 구멍가게마다 찾아다니며 중간도매를 했다. 그 장사를 한 10일쯤 했을까, 어느 날, 순천에서 번영상회를 찾아다니며 상품 거래를 했던 지인을 흑석동 고개에서 반갑게 만났다. 서로 반가웠다. 그 친구 역시 일반 생활용품을 자전거에 싫고 동네마다의 시장가게와 구멍가게를 단골삼아 중간도매를 하고 있었다. 여러 해를 하다 보니 조금은 권태증이 난 것 같았다. “오형, 장사에 경험이 많으니 내 거래처를 맡을 의향이 없소라고 묻기에 쌍수로 환영하고 그것을 인계 맡았는데 그 지역이 노량진 흑석동 상도동 용산일대와 사직동까지였다.

 

서랍(舌盒)장 안에 화장품을 비롯하여 생활용품을 분류해서 채워가지고 단골가게마다 주기별로 찾아다니며 중간도매를 했는데 그 당시는 나까마(일본어)라고 했다. 1961, 그때까지도 흑석동이나 상도동은 아스팔트도 안 되어 눈 비올 때는 발이 풍풍 빠져가며 다니는데 여간 힘들었다. 그 때 자금은 신 응식 장로가 돈암동에 사는 정 시환 장노로부터 보증을 서고 빌려 줬는데 장사가 잘되어 단 시일에 변재를 하고 칭찬을 들었다.

 

도매상 거래처는 주로 남대문 시장 OK상회였다. 거래하다 보면 상품이 지불한 금액보다 더 올 때도 있고, 어느 때는 계산착오로 돈을 덜 받아갈 때도 있어 그럴 대마다 정직하게 정정해주므로 그 도매상에서 자기 상회 직원으로 있어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그 좋은 자리를 사양했다. 그 당시는 생산가로 상품을 중간상인에게 도매하면서 받은 그 현찰로 이자노리를 하는 풍조여서 도매상이나 중간 도매하는 사람이나 모든 상품을 같은 값에 구멍가게에 대주기 때문에 중간도매상이 장사하기 좋은 시기였다.

 

세 식구가 살아갈 정도로 장사가 되어 순천에 있던 가족을 6개월 만에 데려왔다. 가족이 합했으나 내 집이 아직 없어 17년간 셋방 사리를 지겹도록 하면서 고생이 되었지만 교회생활에 위로를 받고 믿음으로 하나님 원망하지 않고 살며 무거운 상품을 싫고 매일 시가지를 왕복하는 동안 사고 한 번 나지 않게 하나님께서 지켜주셨다. 아무리 힘들고 고단해도 성수주일은 물론, 적극적으로 봉사생활을 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2년을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장사하던 중 3호 터널이 공사 시작 전에 이태원 2동에 용산시장주식회사 명의로 시장을 건축하였다. 그곳에 임대점포를 계약하여 입주하면서 자전거 타는 일을 중단하고 육일상회(六日商會)를 개점하여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상회는 발전하여 한 칸을 더 확장하고 상품종류도 다양해서 그 동네에서 만물상회라는 칭호를 받았다.

40세 이전에 공부할 수만 있다면 일반학원부터 등록하여 청소년시절 짜집기

식 학교생활에 못 배웠던 것을 보충하고, 제도권 신학대학에 도전하려고 계획했었다. 그런데 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까지 시장사기한들이 사회의 경제적 혼란을 제일 많이 야기한 시기였다. 그 무리들과 8년 이상을 재판하느라 신학공부 기회도 영영 놓쳐서 목회자의 꿈도 막히고 말았다.

 

육일상회란 간판을 걸고 장사한지 1년이 더 지난 것 같다. 시장회사 직원이 임대료를 받겠다고 호호방문하고 있는데 한편에서 이 시장 건물을 담보해제하지 않고는 임대료를 줄 수 없다고 떠들고 일어났다. 회사 방사장이 유 사장에게 채무관계가 있어 채무이행을 못하는 대신 그 시장 건물을 유 사장에게 담보해준 모양이었다.

 

그날 밤, 상인회의를 진행 중에 나 역시 불의의 편에 설 수 없어서 정당한 방법을 주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회장단에 내 이름도 올라간 것 같다. 그다음 날. 집달리 3명이 들어오더니 내 앞에서 유체동산가압류허가서 를 보이며 임대료를 내든지 압류를 당하든지 택일하라고 윽박질렀다. 나는 처음 당하는 일이라 망설였다. 이윽고 고급 상품에 빨간딱지를 붙이고 간이 금고에 있는 현금까지 몰수하면서 영수증을 써주고 그들은 쏜살같이 달아났다. 내가 논리적이고 내 가게 상품이 고급상품이어서 나 한 사람만 무너뜨리면 문제는 회사 방침대로 될 줄 알았던 모양이다. 회사에선 협박과 회유로 나를 접근해왔다. 상인들 중에는 회사편과 상인 편으로 갈라졌다 따라서 우리가 고개 숙이고 말없이 장사하자라는 두 패로 나뉘어졌다. 만약 그 당시 시장회사에 임대료를 지불한 후에 건물의 담보자(채권자)가 요구하면 또 임대료를 지불해야 된다. 아내는 날더러 그런 일에 앞장서지 말아달라고 권고하고 있었다.

 

그 일을 나는 신앙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봤다. 절대 불의의 편에 서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의인을 반드시 이기게 해주실 것을 굳게 믿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믿는 자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고 결심했다. 압류를 풀고 장사하기 위해서 공탁금을 법원에 지불했다. 그리고 본안소송제기신청서(本案訴訟提起申請書)를 법원에 접수시키고 귀가했다. 회사에선 오우현과 타협의 여지가 없다. 고 여기고 얼마나 채권자(건물 담보자)에게 졸라서 시장건물관리위임장을 받아 이젠 관리자의 명의로 나에게 명도소송을 제기해왔다. 이젠 내가 꼼짝없이 명도를 당할 수밖에....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를 지키고 계셨다. 내 가게가 가압류를 당하기 전, 상인회의에서 회장으로 선출된 사람은 박용섭인데 그는 술고래에 젖어 아무 책임감도 없고 해결방법도 내놓지 않고 그저 그런 삶이었다. 부회장은 회사 측에 머리 숙인 상태였다. 그런 와 중에 박 용섭 회장이 요긴한 정보를 제공해준 것은 나의 사업수명을 연장시켜줬다고 할 수 있다. 그 정보란 유 사장이 시장건물을 매도하려해서 오늘 태평로 법무사 사무실에서 매수자와 매도자가 만나서 담판을 짓는다는 말까지 주석을 달아 말해줬다. 1프로도 신용할 수 없는 그 사람의 말을 그날만은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은 내가 명도당하는 기정사실이 시간과 싸우고 있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태평로 법무사 사무실 윗방에 몰래 들어가서 사장사무실에서 이야기 하는 것을 촉각을 곤두세우고 들을 수밖에 없었다. 매도자인 유 사장은 상인들 입주보증금을 인정하고 건물을 매수자 박 사장에게 매도하는 정도(正道)를 고집하고 매수자는 입주보증금을 인정하지 않고 매입하겠다고(거저먹기 식) 우겼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운명 앞에서 사느냐 죽느냐 판가름을 기다렸다. 하나님! 하나님! 소리 없는 기도를 계속하고 있었다. 만약 보증금을 인정하지 않고 매도하면 오우현 한사람 때문에 전상인의 입주보증금이 날라 가는 것이고 보증금을 인정된 채 매도하게 되면 오우현에 대한 명도소송도 소멸되고 상인 전체가 사는 것이다. 전자대로 된다면 나는 상인들에게 맞아죽을 운명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셨다. 후자대로 매매계약채결이 끝나 벌서 소유권 이전이 된 등기부등본이 내 손에 쥐여졌다.

 

회장과 나는 며칠간 그 사실을 비밀로 하고 시장에서 반대편들의 노는 꼴을 보려고 했다. 날개 짓으로 시장에 들어갔는데 내일이면 오우현이 명도당해 쫓겨난다고 조롱 식 여론이 난무했다. 그러나 동이 터 일어나고 보니 회사 임원들은 벌써 봇짐을 싸들고 나가버렸고. 등기부등본은 폭로되었다. 오우현을 쫓아내려던 회사가 쫓겨나고 말았다. 하나님의 승리요 사단의 괴멸이었다.

나의 30대 나락은 믿음으로 험한 인생 고지를 넘어가는 연습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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