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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울 톡톡
상대적으로 야고보서는 읽기 어렵습니다. 읽다가 주제가 확 바뀌기 때문에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다 끝내지 못하거나, 읽어도 전체를 연결해서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조국 교회 강해 설교자로 알려진 분들은 이런 어려움을 잘 긁어 주지 못하고 야고보서의 특정 부분만 골라 다루고 결국 사람들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넘어 갑니다. 그 결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가 야고보서 전체라고 믿어 버립니다

그런데 야고보서가 쓰여졌던 1세기에도 그렇게 야고보서를 이해하고 끝냈을까요? 야고보 사도가 그렇게 읽으라고 야고보서를 열심히 써서 해외 거주 유대인 동포에게 보냈을까요? 또 그 편지를 받은 유대인은 우리처럼 이해하지 못했을까요? 

아마 그 반대였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야고보서를 아주 재미있게 읽으면서, 멀리 예루살렘에서부터 그들을 걱정해 준 야고보 사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읽었을 것 같습니다. 그 편지 자체가 바로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여 주는 증거였습니다. 

세상 살면서 다른 사람의 문제에 대해서 끼어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소위 "행함이 있는 믿음"을 이야기 하고 남에게 권하지만, 뒤 돌아보면 본인이 본을 보이는 경우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바로 그런 인생을 사셨고 사도 바울이 그랬는데 야고보서를 읽어 보면 멀리 멀리 떨어진 이역에 사는 유대인 성도를 위해서 이런 편지를 썼다니 역시 “행함이 있는 믿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눈 앞에 있는  어려운 형제 자매를 위해서 말만 하면서 손 하나 까딱 움직이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는 분이 넘치는데, 도대체 어떻게 야고보 사도는 멀리 떨어져 사는 유대인 형제를 위해서 이 서신을 썼을까요? 어떻게 그들에게 뼈와 골수를 쪼개는 것과 같은 편지를 보낼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의 사랑을 알았기에 에베소서 4:13절에 나온 예수님이 야고보 사도에게 충만했기에 그랬겠지요? 

결과적으로  야고보 사도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지만 이 편지 자체가 바로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증거가 되고 말았습니다. 야고보 사도에게는 보이지 않는 멀리 떨어진 유대인 형제 교회의 문제는 곧 예수님의 지체에게 생긴 문제였고 그렇다면 자기 자신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편지를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바울이 그렇게 서신을 보냈던 것처럼요....

이렇게 초대 교회에는 교회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사도 바울처럼, 사도 야고보처럼, 사도 베드로처럼, 사도 요한처럼 누군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도 계시록에서 교회에서 생긴 문제를 지적해 주셨는데, 오늘 조국 교회에 이렇게 교회에 문제가 있다고 말해 주는 분은 누굴까 궁금합니다. 왜 "차별하면 안 됩니다"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자본주의 경쟁에서 상처 받게 됩니다" "직장에서 정의를 위해 싸워야 하고 사표 쓰고 나와야 됩니다" 이런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말을 계속 들어야 하는지 정말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야고보 사도처럼 성경에서 근거를 찾아서 말씀을 전하는 분을 간절하게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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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사진을 본문에 넣는 방법 file 2020.05.24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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