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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원 393호] 상처의 골짜기에 임하신 하나님


처음 쪽방촌을 방문하였을 때 저희 팀이 방문한 집은 마치 위태로운 틈새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좁은 길"처럼 좁고, "골고다"처럼 가파른 꼭대기에 위치한 집이었습니다. 4명 정도 되는 방문 인원들이 서로의 무릎을 바짝 붙여야 겨우 앉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교회 출석을 포기한 할머니께서 살던 방이었고, 우리가 오랜만의 손님이었는지 참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겨울의 추위를 잊게 할 만큼 따스한 미소와 생채기 하나 없을 것 같은 고운 인품을 지니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심령 깊은 곳에는 쓰라린 상처를 품고 계셨습니다.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니셨지만, 십수년 전에 어느 교회의 교역자에게 적지 않은 금전적 사기를 당하고 나서는 그 후유증으로 교회를 향한 발걸음을 상당 기간 끊으신 분이었습니다.
담담하게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아 주실 때 저는 무슨 말로 싸매고 위로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습니다. 저 역시 말씀 사역자의 직분을 사모하는 청년으로서 가슴이 먹먹하도록 아팠습니다. 삼키기 어려운 침묵을 깨기 위해 할머니께 좋아하는 찬양이 있는지 여쭈어보았습니다. 할머니는 성가대로 섬기실 때 좋아했던 곡이라고 하시며 조용히 흥얼거리셨습니다.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 예수님은 아름다워라~" 우리는 할머니와 함께 찬송가 88장을 부르고, 그 찬양의 배경이 되는 아가서 2장 1절로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저는 이 본문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흠 없는 아름다운 꽃으로 소개하고, 귀족의 온실의 꽃이 아닌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야생의 꽃으로 자신을 나타내고 계심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는 죄인에게서 멀리 계시지 않아요. 우리가 구주를 떠났을 때도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에요. 그분은 누구든지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를 내쫓지 않으셔요. 사람은 죄인이어서 아름답지 않은 부분들이 있고 결점과 흠이 있어요. 그러나 흠 없는 어린양 예수는 그 전체가 사랑스러운 분이세요. 그리스도는 할머니를 실망하게 하지 않으셔요. 예수님은 우리에게서 무언가를 뺐거나 가져가려고 오신 분이 아니라 자기의 목숨을 많은 이들을 위한 대속물로 주시려고 오신 분이에요. 우리 예수님께 함께 나아가요!"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리고 그 분의 손을 꼭 붙잡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할머니도 많은 눈물로 들어주셨고, 성령님이 그 심령을 부드럽게 만져주신 것을 함께 느꼈습니다.
그 날 이후로 할머니는 꾸준히 교회에 나오고 계십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 꾸준히 나아가고 계십니다. 저와 그 할머니는 쪽방촌에서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예루살렘의 궁전이 아닌 베들레헴의 작은 구유에 임하신 그리스도는 지금도 야생의 꽃처럼 샤론의 좁은 바위틈과 가파른 절벽, 그리고 깊은 상처의 골짜기에 화사하게 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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